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혹시 ‘탐조’라는 취미 알아?
우리 아빠 취미가 탐조인데,
멀리서 새를 관찰하는 거야.
그래서 우리 집에는
진짜 성능이 어마 무시한
270만원짜리 쌍안경이 있어
그래서
나는 가끔 우리 집 옥상에 올라가서
그 쌍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곤 해
아, 물론
당연하게도 나쁜 의도를 품고
어딘가를 훔쳐보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아
우리 집은 구시가지 상가 건물이라,
근처에는 훔쳐볼 아파트도 없었고
요즘 대부분 집에는 다 커튼이 쳐져 있어
훔쳐보고 싶어도 훔쳐보기도 힘들고,
대신 나는
술 취한 사람들을 자주 구경해
재미있거든,
비틀거리면서 춤을 추기도 하고
화를 내는 사람도 있고…
쌍안경으로 그들을 보면서
지금 어떤 상황일까를
상상하고 있으면
생각보다 재밌고 시간도 잘 가더라고
그날 밤도
나는 270만원짜리 쌍안경을 들고
우리 집 옥상에
길가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어
그러다 문득
전봇대에 낙서를 하는듯한
여자를 발견했어
무슨 낙서를 하는지 보고 싶어
그 여자를 보고 있다가
그 여자가 뒤를 딱
돌아서는 순간
진짜, 말도 안 되게
눈이 딱 마주치는 거야
거리도 꾀 있었고,
우리 집 옥상에는 전구도 없었기 때문에
내가 여기 있는지 아는 건
거의 불가능에 가깝거든…
그 여자와 눈이 마주친 게
내 착각이라 생각했던 나는
다시 쌍안경을 쓰고
천천히 그쪽을 바라봤어
그 여자는
정말 내가 있는 장소를 알고 있는 것처럼
나를 바라보며 씩 웃더니
나를 흉내 내듯
양손을 말아 눈앞에 가져다 대고는
다.보.여라고 입모양으로 말했어
그리고 나서는
소름 돋을 정도로 무서운 표정으로
정색하며
그런짓 하지마,
그러다 다친다.
라고 속삭이듯 말했는데
거짓말같이 바로 내 옆에서 말하듯
속삭이는 소리가 들렸어
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아서
벌떡 일어나
맨눈으로 그 여자 쪽을 바라봤는데
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어…
다시 쌍안경으로 찾아봐도
그 여자는 없고
전봇대에 알 수 없는
아랍어 같은 글자와 그림이
그려져있을 뿐이었어
꾀나 겁먹었던 나는
후다닥 집으로 들어가
내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
떨다 잠이 들었고
그리고 다음 날
그 전봇대에 적혀있는 낙서를
확인하기 위해 가봤을 때는
신기하게도
아무런 낙서도,
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어…
그날 이후,
그 여자의 정색하는 표정이
자꾸 생각나는 바람에
너무 무서워서 쌍안경으로
사람들을 바라보는 취미를 버렸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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